2007년 가을, 부석사 여행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한창 유행할 무렵이었다. 책에서 자극을 받은 것인지 책이 불러온 분위기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애매하지만 그 무렵부터 나의 길 떠나기가 시작되었다. 그 길떠나기의 시작에서 만난 이후 몇 가지의 기억이 더해져 부석사에 대한 나의 애정은 조금 각별하다. 처음으로 어렵고 경이로운 느낌의 새벽 예불을 함께 한 곳, 몸서리 쳐지게 매서운 겨울밤의 칼바람을 피해 요사채에 몸을 의탁한 절집, 그리고 평일 일탈을 감행하여 찾은 곳 또한 부석사다. 그렇다고 내 종교가 불교인 것도 아니니 여러 모로 인연이 많이 닿은 절일 것이다.
지난 주말은, 동시다발로 엮여진 일정 때문에 예정된 부석사行이 취소되면 어쩌나 싶어 노심초사했더랬다. 그나마 서울에서의 조카(사촌오빠의 딸) 결혼식이 토요일임을 다행스러워하며, 친척들에게 얼굴 도장만 찍고 경북땅을 날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후에 접어들자 수도권의 꽉 막힌 교통 사정과 금요일 저녁에 손님이 들고 온 생선상자가 발목을 꽁꽁 묶었고, 안 막히면 서울 화곡에서 집까지 한 시간 정도면 될 거리를 3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하고 보니, 진이 빠진 상태였다. 그 와중에 병산서원을 둘러보던 지인들이 무조건 날아오라는 재촉 전화가 빗발쳤지만 선물 받은 생선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우리는 새벽에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일요일, 새벽 3시에 하루를 시작하니 늘 막히는 영동 고속도로 조차 한갓지다.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 고속도로로 갈아타서 쌩쌩 달리니 2시간 만에 닿은 경북 풍기땅. 봉황산 중턱에 자리한 부석사에 이르는 길 양옆으로 사과 과수원이 즐비하여, 연신 상큼한 사과향이 묻어날 듯한 길이다.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아침 공기가 온몸을 파고든다. 어젯밤, 지인들에게 새벽 예불을 하겠다고 뻥을 쳤는데 시계는 벌써 7시를 가르킨다.
![]() ![]() ▲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의 500여 미터 비탈길에 노란 은행잎이 깔려 걷기조차 아깝다.
![]() ![]() ▲ 무엇이든 가장 아름다울 때 찾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는 바램일 터이지만 잎을 떨구고 가지만 앙상한 은행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 흙길. 늘씬한 당간지주가 있어 아쉬울 것도 없고, 아래에서 차근차근 음미하며 걷다보면 지루할 틈도 없다. ![]() ▲ 언젠가의, 점심 공양때 먹었던 그 사과는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탐스럽다.
![]() ▲ 경사를 최대한 이용하여 한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 건물 배치는, 천왕문에서부터 경내가 시작되는데, 사천왕이 지키고 있으니 이 안쪽이 도솔천인 셈이란다. ![]() ![]() ▲ 빨간 고추를 말리느라 군불 땐 방에 매운내가 진동했던 내 기억 속의 요사채를 거쳐 범종루. 여기서부터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높낮이에 차별을 둔 석축을 가늠하는 것도 '맛'일 것이다. ![]() ▲ 범종각 아래에서 본 안양루. ![]() ![]() ▲ 범종각에는 법고와 목어만 있고...
![]() ![]() ▲ 정작 범종은 서편 다른 건물에. ![]() ▲ 범종각의 한 단 위에 방랑시인 김삿갓이 백발이 된 뒤에라야 올랐다는 안양루가 살짝 비껴있다. ![]() ▲ 제멋대로 생긴 자연석을 맞추고 쌓아서 조화로움을 이야기 하는 석축.
![]() ![]() ▲ 안양루 계단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비껴날 생각이 전혀 없는듯한 답사객은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 솜씨를 자랑하는 석등의 미학에 폭 빠졌나보다.
![]() 가파른 맨 끝길에 위치한 '무량수전'은 여전한 감동을 선사한다. 부석사의 절정으로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최고라고 회자되지만 무지의 눈으로 맨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 우연히 작가 한수산씨를 만났고, 들고 있던 자료집에 사인을 받기도 했었다. 이 곳을 다녀와서 한국의 미를 두루두루 담은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를 사 읽었더랬는데, 배 나온 사람을 일컬어 '배흘림'이라고 한창 놀려 먹기도 했었다. ![]() ![]() ![]() ![]() ▲ 무량수전 앞에서, 범종각을 중심으로 바라 본 부속 건물들. ![]() ▲ 싸리비로 마당을 쓰는 한 불제자가 일으키는 흙먼지를 피해, 창건주인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전설이 담긴 부석 앞에 섰는데, 이 뜬돌은 부석사(浮石寺)란 이름의 근간이기도 하다.
![]() ![]() ▲ 무량수전에서 조사당 가는 길목에 화사석을 잃은 석등과 삼층석탑이 있다. 미덥지 못한 기억으로는 층층이 꽃으로 장식한 심심한 느낌의 탑은 예전에 없었던 것 같은데, 정체가 뭘까나?
![]() ![]() ![]() ▲ 시야가 탁 트인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풍광들. 겹겹이 펼쳐진 유연한 소백산 자락을 뒷배경으로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양날개로 굽어볼 수 있다.
![]() ![]() ![]() ▲ 늦었어도 가을은 가을이니까, 알록달록한 색 앞에서 환장한다고 핀잔이다. 누가 그러냐고? 저기 모자 뒤십어 쓴 남자가. ![]() ▲ 느리고 게으르게 걸으며, 아쉬움에 돌아보고 또 돌아보지만 '이만 안녕!'을.... 동부도밭을 가려다가 한단 아래의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그냥 나온 점도 그렇고, 조사당을 생략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이내 곱게 늙어가는 절집을 보러오는 사람들로 바글거리면 아침의 호젓한 느낌이 사라질까봐, 서둘러 나왔다. 방구들이 따끈하게 덥혀진 '종점식당'에서 추위에 으실거리는 몸을 녹이며, 아침으로 청국장이 딸려나오는 산채정식을 시켜 먹은 것을 끝으로 부석사의 그리움을 접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정작 사진기를 들고 찾은 것은 처음이기에, 마음껏 셔트를 눌러본 즐거움도 뺄 수가 없을 것 같다. |
출처 : 여량 님의 블로그 http://blog.empas.com/mylovee7
출처 : 우표수집의 세계
글쓴이 : 자작나무전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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